나선형으로 확장하며
Spiralling Outwards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저는 이것이 편지처럼 느릿느릿하고 사색적이며 구불거리는 흐름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치 하나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과 같지요. 편지는 이메일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편지를 쓸 때 저는 첫 문장을 고르며 망설입니다. 반면 이메일은 습관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하곤 합니다:
“이 편지가 당신에게 잘 당도하기를 바랍니다(I hope this email finds you well).”
이 문장은 형식적인 인사말이자 습관, 근육 기억에 불과해 원래의 의도와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이 이메일이 나를 찾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실, 당신을 찾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가 이런 문장을 처음 쓰기 시작한 걸까요? 그리고 왜? 우리의 소통과 마찬가지로 이 문장도 형식화되었으며, 디지털 매체의 효율성이라는 제약 속에서 변형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거대 언어 모델과 함께 살고 있으며, 이 모델은 단어를 자동화해 전환을 매끄럽게 하고 공백을 채웁니다. 한때 세심하게 다듬어졌던 단어들은 이제 편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 추상화는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뿐 아니라 창작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와 같아 사람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알고리즘에 맞게 잘라내고 변형하도록 강요합니다. 짧은 릴스 영상은 팝송을 삼십 초 하이라이트로 농축해 시작도 끝도 없는 클립으로 만듭니다. 해설 영상들은 소설, 영화, 그리고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그 서사적 풍부함 보다는 단편적이고 평면적인 조각들로 만들고, 참여를 최적화해야 한다는 압박은 아이디어를 지나치게 단순화된 형태로 압축해버립니다. 이렇게 강요된 획일성을 비판하면서도, 저의 빵이 틀에 맞게 구워지고 제 부엌 카운터에서 발효 중인 채소들이 병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부드럽게 품어주는 형태와 강제로 틀에 맞추는 것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Guin)은 에세이 픽션의 여행가방 이론(The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에서 초기 기술들을 무기가 아닌 그릇으로 언급하며, 돌봄에서 탄생한 도구로서의 기술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기술에 대한 재구성은 고대 그리스의 아날로그 컴퓨터이자 난파선에서 발견된 안티키테라 메커니즘(Antikythera Mechanism)을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지구 중심의 우주를 모델링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장치는 천체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수학적 추상화를 품었던 그릇이었습니다. 이제는 당시의 경이로움과 더불어 우리가 더 이상 믿지 않는 세계관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폴로 8호의 윌리엄 앤더스(William Anders)가 촬영한 상징적인 지구돋이(Earthrise) 사진은 지구를 우주의 중심이 아닌, 많은 존재들 중 하나인 연약한 몸으로 제시하며 새로운 인식의 그릇을 제공했습니다.
지능에 대한 지배적 서사가 인간의 패턴 학습, 언어를 통한 소통 등 일부 특성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인간 지능의 유일성에 대해 우리가 믿고 있는 것 중 무엇이 더 이상 사실이 아닐까요? 컴퓨팅의 발전 덕분에 기계의 지능과 인지적 기술은 이제 정보를 저장, 분석, 정리하고 전달하는 능력에서 우리를 훨씬 앞지르고 있습니다. 디지털 생명체와 인공지능을 마주한 우리는 그 공허함 속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요? 인간 지능을 여러 존재들이 세계를 인식하고 기억하고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로 바라볼 때, 우리의 시선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이러한 시점의 전환은 김정현 큐레이터와 우카이 프로젝트가 공동 제작한 땅거미 지는 시간이 제기하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캐나다 작가 에리카-진 링컨, 프랑수아 퀘빌론, 마우리스 존스와 한국 작가 언메이크 랩, 이선주, 황선정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유기적 지능과 기계적 지능이 얽혀 있는 생태계를 탐구합니다.
작가들은 예술적 탐구를 통해 기후 변화, 자동화의 증가, 숨겨진 권력 구조에 의해 변화하는 세계의 경계를 드러내며, 서로 얽혀 있는 시스템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다시 생각하도록 초대합니다. 이러한 ‘얽힘’의 개념은 치페와(Chippewa) 법학자 존 보로우스(John Borrows)가 얽혀진 영토성(Entangled Territorialities) 서문에서 언급한 다음의 말과 깊이 공명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관계에 얽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선택하지 않은 부모에게서 태어납니다. 우리의 가족은 우리가 도착하기 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언어, 문화, 세계관은 우리가 선택할 겨를도 없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우리의 형성기에는 우리가 설계하지 않은 사회적, 정서적, 경제적 관계들이 얽혀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들은 우리의 존재에 깊이 새겨져 있으며, 대부분 우리의 동의 없이 이루어집니다.”
보로우스의 성찰은 존재의 근본적인 상호연결성을 강조합니다. 언어, 문화, 환경과 같은 유산의 실타래로 엮인 하나의 거대한 태피스트리입니다. 얽힘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땅거미 지는 시간 속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참여 작가들은 생태적 은유, 알고리즘 시스템, 문화적 신화를 바탕으로 이 세계 속에서 우리의 관계를 재구성합니다.
프로젝트의 협업 과정은 퀘벡주 웨이크필드 인근의 재생 버드나무 농장 페름 랜톤(Ferme Lanthorn)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서 진행된 교류, 워크숍, 현장 연구는 깊이 있는 연결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농장의 경작과 재생의 리듬은 작업의 배경이자 은유가 되었고, 작가들은 땅의 순환, 비인간 존재들, 그리고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이 얽혀진 시스템이 작업에 스며들게 했습니다.
아니시나아베족(Anishinaabe)은 이 지역의 원주민으로, 거미 여인이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는 거미줄을 짜며 그들의 삶이 펼쳐지도록 보호한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집트 신화에서 니트와 그녀가 만든 거미는 새벽에 세상을 짜고 땅거미 질 무렵 그것을 풀어낸다고 전해집니다. 신화는 새로운 맥락에서 이야기를 전달하고 다시 전달함으로써 우리를 단단히 붙들어줍니다. 마치 끊임없이 퍼져 나가는 실타래처럼, 새로운 사건과 일들을 교차시키며.
우리는 랜톤의 메리 엘리스(Mary Ellis)와 함께 버드나무 바구니를 만드는 기초를 배우며 그릇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려 했습니다. 새벽에 수확된 버드나무를 흐르는 개울에 담근 후 손으로 부드럽게 잡아 형태를 잡았습니다. 일련의 지침을 따르는 행위는 기계적이라 치부될 수 있지만, 정확한 순간에 손끝으로 적절한 힘을 가하는 행위는 재료의 ‘살아있음’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친밀한 경험이었습니다. 땅이 품어준 생명력으로 버드나무는 다른 존재를 담는 부드러운 그릇으로 변화했습니다.
지구에서 강제로 채굴된 희토류 광물에서부터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위성까지, 이들은 한때 모든 생명체가 자란 동일한 풍경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생명체들 중 일부는 우리가 아직 인정하지 못한 다양한 형태의 지능을 지닌 존재들입니다. 현대 기술은 생태적 시스템과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문화가 뿌리를 내리는 세계관의 외부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버드나무로 되돌려 봅시다. 한때 나무의 가지는 주변 풍경에 의해 부드럽게 지탱되고, 아마도 인간의 몸을 통해 흐른 물들이 그 가지를 먹여 주었을 것입니다. 거미에 관한 이야기들이 언급하는 것처럼, 버드나무 가지는 중심에서 주변으로 나선형으로 퍼져 나가며, 원형 바구니를 형성하는데, 이는 세상을 개별적인 부분이 아니라 연속적인 전체로 보는 방식들을 나타냅니다. 이는 땅거미 지는 시간의 작품들과도 공명합니다. 여기서 예술가들은 알고리즘적이고 생태적인 시스템을 묶는 상호 연결된 실타래를 탐구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순환적인 귀환이 더 이상 현대 삶의 주된 리듬은 아니지만, 우리가 의존하게 된 진보와 선형 논리의 추상적 개념 아래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이러한 경험은 땅거미 지는 시간의 작품과도 연결됩니다. 작가들은 알고리즘과 생태계 시스템을 잇는 실타래를 탐구하며, 현대의 추상화된 모델과 알고리즘 속에서도 우리가 물리적 세계와 얼마나 깊이 얽혀 있는지를 일깨워줍니다.
땅거미 지는 시간은 단순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양한 시각의 그물을 엮으며, 인간, 기술, 생태계가 우리의 이해를 지속적으로 덧쓰는 관계를 성찰하게 합니다. 우리는 항상 통제할 수 없는 서사의 참여자입니다.
어쩌면 이 글은 하나의 초대장일지도 모릅니다. 불확실함 속에서 머물며,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새로운 그릇을 상상하자는 제안 말입니다. 결국, 편지는 응답을 요청하니까요.
I began writing this article thinking it would be like a letter—pensive, slow, and meandering, much like the process of bringing an idea to fruition. Letters present a stark contrast to email. With letters, I hesitate over every opening. With emails, I routinely begin without much thought:
“I hope this email finds you well.”
This opening line has become a formality—a habit, a muscle memory, detached from its original intent. I hope this email doesn’t find me. As a matter of fact, I hope this email doesn’t find you either. Who started writing this phrase, and why? Much like our communications, the phrase has become transactional, reshaped by the efficiency-driven constraints of digital mediums. Today, we live among large language models that automate words, smoothing transitions and filling gaps. Words, once crafted carefully, have become tools of convenience. This abstraction shapes not only how we communicate but how we create.
Social media platforms serve as a Procrustean bed, forcing people to chop and mould would-be stories into forms that appease the algorithms. Short-form reels distill pop songs into 30-second highlights with neither beginnings nor ends. Explainer videos strip novels, movies, and many other forms of storytelling of their narrative richness, while the relentless pressure to optimize for engagement flattens ideas into digestible fragments. As I critique this arbitrarily enforced uniformity, I’m reminded that the bread I bake conforms to the shape of its pan and that fermenting vegetables on my kitchen counter are held in a jar. Yet, there’s a profound difference between being held gently by a form and being forced into a rigid shape.
Ursula K. LeGuin, in her essay The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 referred to early technologies as vessels rather than weapons—tools for carrying and holding that emerged out of care. This reframing of technology provides a lens through which to view the Antikythera Mechanism, an ancient Greek analog computer recovered from a shipwreck. Built to model the geocentric universe, it was once a vessel holding precise mathematical abstractions to predict celestial movements. Yet, it now stands as both a marvel of its time and a relic of a worldview we no longer believe true. Similarly, the iconic Earthrise photograph captured by Apollo 8’s William Anders offered a new vessel of perception, presenting Earth not as the center of the cosmos but as one fragile body among many. When the dominant narrative about intelligence focuses disproportionately on a narrow subset of human traits, exemplified by the ability to learn, extrapolate patterns, and communicate through language, we must ask ourselves, what do we believe about the uniqueness of human intelligence that is no longer true? Machine intelligence and cognitive technologies now possess a much greater capacity to store, analyze, sort, and communicate information than we do, thanks to advancements in computing. When we reflect on our digital lives alongside artificial agents, what do we see in the void staring back? What shifts when we consider human intelligence as just one among many ways of perceiving, remembering, and knowing?
These shifts in perspective mirror the questions posed by When Spiders Spin Dusk, co-produced by Junghyun Kim and UKAI Projects. Featuring Canadian artists Erika-Jean Lincoln, François Quévillon, and Maurice Jones, alongside Korean artists Unmake Lab, Sunjoo Lee, and Sunjeong Hwang, the project explores entangled ecosystems of organic and machine intelligences.
The artistic methods of inquiry probe the shifting contours of a world shaped by climate change, increased automation, and hidden authoritarian forces, inviting us to reconsider our place within a web of tangled systems. This notion of entanglement—of relationships we neither choose nor fully control—resonates deeply with the words of Chippewa legal scholar John Borrows in his foreword to Entangled Territorialities:
To be alive is to be entangled in relationships not entirely of our own making. We are born to parents whom we did not choose. Our families pre-existed our arrival. We perceive languages, cultures, and world views before getting much choice in the matter. Our formative years are threaded with social, emotional, and economic relationships that we did not conceive. They are woven into our very being, largely without our permission.
…
We cannot fully step outside of our past conditioning or present circumstances and totally recreate ourselves in the process. We do not make anything whole out of entirely new cloth. We must use the materials at hand in fashioning our alternatives.
Borrows’ reflection highlights the profound interconnectedness of existence—a tapestry woven from inherited threads of language, culture, and circumstance. This recognition of entanglement underpins the works of When Spiders Spin Dusk. The participating artists draw from the materials at hand—ecological metaphors, algorithmic systems, and cultural mythologies—to reimagine our relationships within a world of interdependent beings.
The project’s collaborative process materialized at Ferme Lanthorn, a regenerative willow farm near Wakefield, Quebec, where structured exchanges, workshops, and field studies fostered deep connections. At Ferme Lanthorn, the rhythms of cultivation and renewal became both a setting and a metaphor. The artists engaged deeply with the cycles of the land, the non-human inhabitants, and one another, allowing these tangled systems to inform and shape their practices. The Anishinaabe, original inhabitants of the terrain where Ferme Lanthorn is situated, tell the story of the Spider Woman as a protector, weaving webs to watch over children in their dreams as their individual lives unfold. In Egyptian lore, Neith and the spider she created spin the world into being at dawn and unravel at dusk. Myths anchor us through telling and re-telling stories in new contexts, like continuous threads spiralling outwards., intersecting new events and happenings. In an attempt to witness bringing a vessel into being, we worked with Lanthorn’s Mary Ellis to learn the fundamentals of willow basketry. Our hands gently held whips of willow, harvested from the farm at dawn and soaked in a running creek, and gave them form following a series of instructions. Though the act of following a series of instructions can easily be dismissed as mechanical, the press of the fingers at the right moment with the proper force presents itself as an intimate and direct encounter with the aliveness of the material—an aliveness that we tend to forget about the physical infrastructure underpinning our digital lives. From the rare earth minerals extracted forcefully from the ground to the satellites ripping their paths across the night sky, they were once cradled by the same landscapes that raised all beings bearing different forms of intelligence—some of which we have yet to acknowledge. Modern technologies do not exist independently of ecological systems nor outside worldviews from which cultures take root. Let’s pull our focus back to the willow, once branches on a tree held gently by the landscape surrounding and fed by the bodies of water that perhaps flowed through our human bodies at one point. As the webs of stories about spiders reference, the branches of willow spiralling from center to peripheral, composing a round basket, represent ways of seeing the world not as discrete parts but as a continuous whole. This resonates with the works from When Spiders Spin Dusk, where artists explore the interconnected threads that bind the algorithmic and ecological systems. They remind us that cyclical returns, though no longer the primary rhythm of modern life, persist beneath the abstract notions of progress and linear logic on which we have become reliant.
Even as modernity abstracts our realities into models and algorithms, our technologies remain entangled with the physical world: the flicker of a light during a coronal mass ejection of the sun, the silence of a power outage caused by an electrocuted raccoon in downtown Toronto, the corrosion of electronic devices in the relentless humidity that came with a heavy flood. These moments collapse the boundaries between modern infrastructure and the natural world, grounding us in the inescapable interdependence of all things.
When Spiders Spin Dusk does not offer simple answers. Instead, it weaves a network of perspectives, inviting us to reflect on the relationships—between humans, technologies, and ecologies—that constantly overwrite our understanding of our humanness and what it means to live among beings that inhabit the world differently. We are participants in the unfolding of narratives we do not always control.
Perhaps this is a letter of invitation—an appeal to linger in the discomfort of uncertainty and imagine new vessels for carrying the world forward. After all, a letter asks for a response.